파이널 판타지 15
2006년 '파이널 판타지 13'의 또 다른 프로젝트 시리즈로 발표되었던 '파이널 판타지 베르서스 13'은 가끔씩 트레일러만을 공개하며 오랜 시간 동안 팬들을 기다리게 해왔습니다. 그리고 2013년 '파이널 판타지 베르서스 13'은 타이틀 공개 7년만에 '파이널 판타지 15'으로 타이틀을 변경하고 메인 디렉터였던 노무라 테츠야를 타바타 하지메로 교체하는 등의 변화와 함께 본격적인 파이널 판타지 15의 제작에 돌입하는 듯 했습니다. 타이틀이 파이널 판타지 15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기존에 선보였던 콘셉트에 변화가 일어났고 일부 등장 캐릭터가 교체되는 등의 작업도 이루어졌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를 예고했던 노무라 테츠야 디렉터의 파이널 판타지 베르서스 13 대신, 정해진 운명 속에서 어둠에 맞서 싸우며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타바타 하지메 디렉터의 파이널 판타지 15이 완성된 것이지요. 파이널 판타지 15은 다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크리스털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주인공 '녹티스 루시스 카일룸'은 아버지의 애차 '레갈리아'를 몰고 도로를 달리며 스마트 폰을 통해 동료들과 소식을 주고 받습니다. 이처럼 파이널 판타지 15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세계지만 파이널 판타지라는 제목에 걸맞은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이오스'라는 가상의 무대를 창조해내기도 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는 이 이오스를 무대로 한 두 편의 미디어 믹스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영화 '킹스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15'과 '브라더 후드 : 파이널 판타지 15' 입니다. 이 두 편의 작품들은 파이널 판타지 15과 같은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킹스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15은 본편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며, 브라더 후드 : 파이널 판타지 15은 본편 시작 전에 일어난 등장 인물 일행들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이 두 편의 작품들은 파이널 판타지 15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 중 킹스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15은 영화를 보지 않으면 게임의 이야기 전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미디어 믹스를 통해 세계관을 확장하고 게임의 내용을 보충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파이널 판타지 15은 게임 본편의 내용을 보충하는 정도가 아닌,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할 콘텐츠를 따로 나누어 발매한 셈입니다. 더욱이 파이널 판타지 15의 내용의 중심이 되는 이오스 신화 이야기와 주인공 녹티스의 어릴 적 이야기를 게임 내에서는 '스토리 튜토리얼'과 문서 아이템 몇 장으로만 언급하고 있어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게임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시리즈 최초로 오픈 필드를 구현하여 파이널 판타지 15의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만끽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실제로 첫 챕터에서부터 이오스의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메인 퀘스트를 무시하고 버려진 광산에서 강력한 몬스터와 마주칠 수도 있고 평화로운 리조트에서 낚시를 하거나 토벌 의뢰로 수입을 올릴 수도 있죠. '여행'이라는 테마는 게임 내에서 정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여행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시커먼 남자들뿐이라는 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글라디올러스, 이그니스, 프롬프토 이 세명의 캐릭터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함께하는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여행이라는 테마가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와 메인 퀘스트 진행과는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가볍게 떠난 여행이지만, 왕도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일행이 복수를 위해 힘을 기르고 대항하는 초반 스토리 진행 중에도 언제든지 낚시를 할 수 있고 캠핑을 하며 이그니스의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심지어는 전투 중에 여유있게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여행을 마치고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면 다시 심각한 분위기의 컷신이 흐르곤 합니다. 물론 이 같은 문제는 대부분의 오픈 월드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큰 사건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서브 퀘스트 때문이죠. 하지만 본 작품에서는 그 두 개의 이야기가 따로 존재하는 것만 못하게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하나의 큰 사건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들이 때로는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보이기도 하죠.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러한 자유로운 여행 분위기 자체는 매우 잘 담아냈기에 메인 퀘스트와의 흐름의 부조화가 더욱 아쉽게 느껴집니다. 이례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15은 조작 가능한 캐릭터가 오직 주인공 녹티스 한 명뿐입니다. 턴제 RPG에서 액션 RPG로 변화한 장르상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애초에 계획되었던 파이널 판타지 베르서스 13은 실시간으로 조작 캐릭터를 바꾸어가며 플레이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에 비교하면 전체적인 흐름에 변화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파이널 판타지 15의 스토리는 대부분이 녹티스의 시점으로 흘러갑니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을 주기 위한 의도적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문제는 파이널 판타지 15의 미디어 믹스 콘텐츠에서 다룬 이야기와 게임 내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대해서 녹티스가 모르고 있다면 플레이어 역시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플레이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중반 이후부터 급속도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은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외에는 전혀 알 길이 없으며,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거나 설명이 부족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스토리 전체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본편의 흐름을 녹티스의 시점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으로 봐도 게임 내에서 설명되는 부분은 극히 일부여서 그저 '사건이 일어났다. 아무튼 사건이 일어났다'라는 전개만 반복될 뿐입니다. 데이원 패치를 통해 킹스글레이브 : 파이널 판타지 15의 영상 일부를 메인 스토리에 추가했지만 휙휙 지나가는 짧은 영상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오픈 필드를 벗어난 이후에도 메인 스토리 역시 개연성 없이 스테이지만 놓인 채 이야기가 전개될 뿐이며 이는 악명높은 챕터 13에서 쐐기를 박게 됩니다. 출처: 루리웹